#안전한미술계를요구합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함께 용기있는 목소리를 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전한 미술계를 요구하는 움직임에 동참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우리는 어제와는 다른 변곡점에 다시 섰습니다. 부디 지속적인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공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은 언제나 약자입니다. 우리는 증명할 수 없는 피해를 진술하고, 기록할 수 없는 이름을 말하며, 매번 법적인 위험부담을 감수합니다. 아동 성착취 비디오를 유포한 남성이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는 사법체계 안에서 남성의 가해 행위를 주장하는 것은 모래 위에 글씨를 적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나와 내 여성 동료들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계속 말해야만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냉소와 외면을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한 줌의 여성들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증명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제도적 대응의 어려움을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관계자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당장의 조치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남성 개인의 안위보다 피해자와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시기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소통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료로서 신뢰했던 사람들로부터 당혹스러운 침묵에 부딪히며 깊은 무력감, 절망감, 위협감을 느꼈습니다. 언제든 조금의 변화라도 이루어진다면 진심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한 뼘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또 다시 많은 여성들의 시간과 에너지, 안전을 담보로 걸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망을 요구하기 위해 특정될 여지를 제공하여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모순을 또 다시 초래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이 모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믿고자 합니다. 불신의 벽을 세우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2016년 #예술계_내_성폭력 고발 이후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미술계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일 것입니다.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위해 꾸준히 발언해온 여성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여성을 향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며, 우리 자신이 자유롭고 안전한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또한, 성폭력을 정의하는 법적인 사각지대를 악용하여 여성들을 괴롭히는 예술계의 수많은 남성 가해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202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