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흰 줄기 아지랑이로 두 대양이 탕탕 부딪힌다. 명멸을 반복한 할로클라인의 긴 시간 속에 밀려난 염분과 아주 가끔 물벽을 뒤집어 섞은 산소를 생각한다. 김아해와 양하의 2인전 《할로클라인》은 사건, 재난, 알고리즘이 임의로 주조해 낸 확률적 환각들이 저항이나 균열 없이 일상에 스며들어 온 만연성을 가로지른다. 찢고, 분절하고, 겹치고, 잇고, 그리며, 부단히 운동하는 이미지[주1]들을 손에 쥔다. 과거 취향의 기호로 소비된 시누아즈리 패턴 벽지부터 움직임을 멈춘 폭발, 구름, 인물들의 동세까지, 이 전시는 수천만 년의 기원을 지닌 이미지의 활동성을 쫓는 회화를 따라간다.
3년 전, 인공지능 미드저니(Midjourney)로 생성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품 롱패딩 합성 사진이 전 세계 디지털 플랫폼을 떠돌았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사진들에서 사람 이마 주름 하나쯤은 명령어 입력 한 번으로 가뿐하게 지워지고, 심지어 트럼프는 실제 이란 공격 장면과 미국 히어로 영화의 시각 효과를 중첩해 선거 캠페인을 한다.[주2] 이처럼 보편화, 상업화, 정치화된 AI 기술의 과잉 속에서 이미지라 불리는 평평한 시각물이 말하는 진실이란, 우리가 더는 기록의 진실성을 맹신하지 않기로 한 암묵적 약속 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포스트-포토그래픽(Post-photographic)’ 시대의 국면을 마주한다. 기록 매체가 지녔던 실재의 증거, 즉 지표성이 무너지고 디지털 데이터의 확률적 계산이 세계를 재창조하는 환경에서, 이미지의 기본값은 ‘합성 이미지(Synthetic images)’가 되어 실재와의 연결고리를 잃고 맴돈다.[주3] 그 이면에는 진실이 새로운 기술로 위장되어 거짓 정보를 확산시키고, 그것의 진위를 가늠하는 리터러시가 확장되어 온 역사가 자리한다. 이는 16세기의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오늘날의 인공지능 기술에 이르기를, 인류 삶의 시각 영역에 충격을 던져 온 새로운 ‘도구’의 형성이 반복된 시간들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신기술의 발전에 직면하는 충격은 기술의 존재를 넘어선다. 그것은 이미지가 그 자체로 진실이라는 ‘기록’의 기능에 순응하지 않기로 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 합의를 지지하며 진실의 소멸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적 만연으로 향한다.
양하는 역사적 파국이나 대중적 소비와 함께 맥락을 상실한 이미지들을 평면과 조각의 표면으로 불러들인다. 이는 뉴스의 폭발, 화재의 연기, 무너진 기둥 등 사회적으로 무수히 소비되어 껍데기만 남은 재난의 시각적 내러티브를 겨냥한다. 끔찍한 현실과 참혹한 비극을 마주할 때 무거움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발휘하는 방어기제처럼, 그가 참조하는 폭력과 파괴의 형상들은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레이어, 만화적 형상, 장식적 패턴으로 치환된다. 그는 이 방안과 방도가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을지 물으며, 최초의 분노와 멀어진 스스로에게서 발견하는 모순과 의심을 반복하고 다시 희박한 의지를 끌어내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 38〉(2023)와 같은 그림을 그리기에 나선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신의 책장에 잠들었던 드로잉들을 꺼내어 ‘연습’이라 이름 붙이고 잇는다. 〈폭발 연습〉(2020) 연작은 파괴적 사건을 반복적 행위로 명명하고, 거대 재난이 미디어에서 가벼운 기호로 소비되는 구조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사건의 참혹함을 유희적 레이어로 미끄러뜨린다. 〈건너기 연습〉(2018)은 1970년대 매스게임 아카이브의 동영상 프레임을 스크린샷으로 모아 얼굴은 작가의 캐릭터로, 몸은 도형적 기호로 전환해 그려나간 것이다. 그 속에서 안무는 점점 해체되고 운동감의 순서가 뒤바뀌며, 흩어진 신체가 새로운 조형으로 재조합된다. 〈5번 연습〉(2021), 〈6번 연습〉(2020), 〈8번 연습〉(2020)은 폭발, 성모마리아, 캐릭터 엘모 등 운동감과 파괴력이 공존하는 스케치들을 반복·변주하며 비극의 기호가 드로잉의 용법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 일련의 드로잉들은 과거 그가 캔버스로 옮기지 못한 소위 ‘실패한’ 작업들이었다. 화내는 마리아, 움직이는 폭발이 되지 못한 여러 겹의 연필과 유채 자국들, 그리고 이끌리듯 남겨진 흔적들. 절대 섞이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층들이 실은 천천히,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는 시간을 역행해 이미 결과가 된 것들을 한데 모아 비선형적으로 합성된 이미지를 만들었다.
김아해의 작업은 이미지가 실재로부터 이탈해 가상으로 주조되는 기술적 하부구조와 시스템을 향한다. 그는 이미쌓인 이미지들의 이동을 관찰하고 배치하는 ‘편집자’로 개입하며 포스트-포토그래픽 환경 속 이미지의 지위를 파고든다. 디지털 알고리즘과 매체적 환경이 현실의 맥락을 소거하고 스펙터클을 양산하는 메커니즘을 기술적 실험의 도구로 삼아,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회화적 프로세스와 노동의 집적으로 노출시킨다. 이로써 그는 이미지라는 개념이 더는 원본성을 지닌 어떤 시각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며 번역되는 표본이자 기호임을 보여주는 흐름을 조망케 한다.
〈달은 움직이는가〉(2026)는 그가 직접 촬영한 풍경 사진을 인공지능 툴에 입력해 12프레임의 움직이는 영상으로 변환한 뒤, 이를 프레임 단위로 쪼개어 세라믹 타일에 유광 인화한 작업이다. ‘달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여 달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물리적 현상에서 착안해, 현상과 실재에 끝없이 간극을 벌리는 이미지의 유동성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17-18세기 유럽의 시누아즈리 풍경 벽지를 차용하여 겹겹이 뜯긴 벽지들을 다른 화면에서 출발점으로 삼는 재귀적 구조의 회화 〈뜯어진 벽지〉(2026) 연작으로 이어진다. 연작은 그의 정체성이 담긴 한국에서 시작해 동아시아-중국-한국-중동아시아-유럽-한국 등 여러 지형을 오가는 상상적 흐름이 혼재된 것으로, 각국이 생산하고, 차용하고, 소비한 이미지와 효과를 패널 위에 그려 내는 매체적 번역 과정을 내포한다. 〈벽지가 있는 방〉(2026) 연작은 벽지 패턴이 그려진 지지체 위에 또 다른 종이와 이미지들을 겹쳐 그린 트롱프뢰유식 회화다. 영국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19세기 사진 아카이브를 AI가 왜곡·컬러링한 이미지, 탐험 사진, 시아노타입 인화, 전사, 붓질 등 다양한 매체적 방식을 혼용한다. 약품 흡수율의 차이로 인해 시아노타입 인화면에 남은 수채화 같은 물자국과 붓자국은, 수정이 불가능한 수공적 개입을 통해 매끄럽고 빠르게 생산되는 디지털 이미지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려 한다.
전시장 한편의 공간에는 김아해의 〈뜯어진 벽지〉 연작과 이 작업이 초대하는 길을 따라 양하의 〈울라고 만든 장면인데 울어야지 뭐, 38〉, 김아해의 〈A Door〉(2018)가 이어진다. 양하가 재난과 비극의 잔상을 파스텔톤의 유쾌한 자취와 장식적 패턴으로 감싸안는 방어기제는 김아해가 유년 시절 방 문의 기억을 물리적 지지체로 변환하며 공간을 측정하던 초기 조형적 태도의 원형과 동일한 층위에서 맞닿는다. 양하의 방어기제가 비극을 유희적 패턴으로 유예하는 현재적 장치라면, 김아해의 방 문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시원의 장치다. 여기서 두 사람은 각각 파괴된 실재와 잃어버린 시간을 ‘신체적 척도’로 복원하려는 유사한 의지를 다진다.
전시가 호명하는 ‘할로클라인’은 진실과 거짓, 과거의 사진과 현재의 AI 생성 이미지가 뒤섞여 경계가 모호해진 작금의 시각 환경을 가리킨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김아해의 〈달은 움직이는가〉는 벽에 부착된 양하의 〈폭발 연습〉 배치를 물에 비춘 듯 떠낸다. 김아해가 이미지의 이동과 유동성을 편집자적 태도로 포착하고 양하가 그 위에 소비된 이미지의 파편과 패턴을 겹칠 때, 이곳에는 서로를 삼키지 않으면서 경계 짓고 교섭하는 수중의 지형이 띄워진다. 그것은 가상과 알고리즘이 실재를 압도하는 환경에서 유실된 감각을 복구하려는 화가들의 원초적 반발력이자, 기계적 통제에 소모되던 삶을 되찾아오는 주체적 회복력이기도 하다. 완전히 섞이지 않는 두 대양과 같이, 유동하는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적 제스처로 붙잡히는 이미지들이 부딪히며, 신비로운 흰 줄기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이 만성적 만연함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1. 철학자 질 들뢰즈는 카메라의 등장 이후 도래한 시각 환경을 가리켜 “나타나는 것들의 집합을 이미지라고 부르기로 하자”며, 일상적 지각의 고정성을 넘어 물질 속에서 운동을 발견해 내는 ‘운동-이미지’의 세계를 역설한 바 있다. 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생성과 변모의 과정으로 유동하는 당대 이미지의 성격을 가리키기도 한다. (질 들뢰즈, 『시네마 1: 운동-이미지』, 1983; 이솔, 『이미지란 무엇인가』, 민음사, 2023, 196쪽에서 재인용.)
2. 백악관이 공개한 이란 공습 관련 홍보 영상 ‘Justice the American way’(2026년 3월)는 실제 군사 작전 화면에 〈아이언맨〉, 〈탑건〉 등 할리우드 영화의 시각 효과를 짜깁기하여 참혹한 폭력을 오락적 스펙터클로 소비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관련 보도는 다음 기사 참조. India Today, “‘Justice the American way’: White House video mixes Hollywood with Iran strikes,” 2026. 3. 7.
3. Serafinelli, E. (2026). “Seeing is no longer believing: visual-AI, deepfakes, and the semiotics of synthetic images.” Visual Studies, 1–13. https://doi.org/10 .1080/1472586X.2026.2679117
김아해, 양하 2인전
《할로클라인》
2026. 9. 23. ~ 10. 15.
오후 12 ~ 7시 (휴관 없음)
헤리시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58-1, 에이치원빌딩 B1F)
기획 협력, 글 | 김진주
그래픽 디자인 | 이승연
사진 | Studio18
Kim Ahae, Yang-ha
《Halocline》
2026. 9. 23. ~ 10. 15.
12 ~ 7 PM (Open Daily)
Heresi
(58-1, Dongsomun-ro, Seongbuk-gu, Seoul)
Curatorial collaboration, Text | Kim Jinju
Graphic design | Yi Seungyeon
Photograph | Studio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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